"며느리가 무섭다" 공포에 떠는 시어머니
'며느리살이'로 진화한 고부갈등… 열악한 복지환경이 원인
전문가 "여자들 사이의 갈등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 한국아이닷컴 김민정 기자 mj0407@hankooki.com
20여 년간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홍현숙(72) 할머니는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하루하루가 힘들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 둘을 키워 대학까지 보냈지만, 며느리와의 오랜 갈등으로 남몰래 고민을 하고 있다. 일하고 돌아온 며느리의 신경에 거슬릴까 봐 저녁 시간에는 아예 눈치껏 방 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는 홍 할머니는 "며느리와 사이가 안 좋아지면 딱히 갈 곳도 없으니 싫은 소리는 꿈도 못 꾼다"고 한탄했다.

홍 할머니의 며느리 김하얀(47)씨에게도 애로사항이 많다. 김씨는 "시어머니 나름대로 애쓰시는 건 알지만, 솔직히 예전과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지 않느냐"며 "무작정 어머니 방식대로 아이 교육이나 집안일을 하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남편 김종권(48)씨는 20여 년간 집안 문제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있다. 그는 "물 흐르듯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이다. 괜히 나섰다가 긁어 부스럼만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시어머니들이 신종 시집살이 공포에 떨고 있다.

직장 생활하는 젊은 며느리의 뒷바라지를 하는 시어머니들이 점차 늘면서 시어머니들 사이에서 '며느리살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홍 할머니도 바로 이 매서운 며느리살이로 속병을 앓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만 5세 이하 자녀를 둔 가정의 보육비 및 양육수당 지원을 늘렸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보육ㆍ복지환경은 열악하다. 상대적으로 교육 환경이 좋고 비용이 낮은 국ㆍ공립 보육시설은 출산 전 예약을 해야 할 만큼 경쟁이 심하고 직장내 육아지원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사회적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도움의 손길을 찾아 헤매던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며느리살이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인에게서 빈번히 발생한다. 자식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하거나 아들의 수입이 충분하지 않으면 시어머니가 아들 내외에게 노동력으로 대신 마음의 빚을 상환하는 풍속이 생겼다.

노인들은 사회ㆍ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스스로 주장을 내세우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타인과의 갈등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전문가들이 노인들에게 마지막까지 경제권을 놓지 말라고 권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경계가 불분명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도 며느리살이가 탄생한 배경이다. 모자의 경계가 융합되면서 부부가 고민해야 할 자녀 양육 문제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상의해야 할 일이 됐다. 홍 할머니의 사례처럼 시어머니와 아내가 양육의 중심이 되는 경우 남편은 가정생활에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 남편의 역할이 사라져버리면서 모든 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몫이 됐다.

며느리살이는 외형적으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어머니의 노동 과부하, 며느리의 이중노동, 남편의 역할 부재 등의 문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고부 갈등이 단순히 버려야 할 폐습이나 여자들만의 갈등이 아닌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돼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며느리살이로 인한 가족 갈등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선 모든 부부는 가사 및 양육 책임이 전적으로 부부에게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가사노동과 양육에 대한 모든 문제를 수시로 상의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노부모는 어디까지나 조력자일 뿐이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일하는 걸 당연시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노인에게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 가사 도우미 등의 도움을 우선으로 받고 노부모에게선 보조 도움을 받는 게 좋다.

전문가들은 며느리살이라는 단어 자체가 남편 역할을 배제한 채 여-여 갈등을 조장하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가족상담심리전문가 한혜규 교수는 한국아이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며느리살이라는 용어는 남성의 양육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여자들의 갈등으로 치환하는 매우 가부장적인 관점의 신조어"라며 "며느리살이라는 단어에는 아들에 대한 시모의 집착, 어머니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남편에게 소외된 아내, 사회 구조적 변화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남성과 사회의 문제가 깊이 개입돼 있음에도 그 부분을 덮어두고 여성들의 갈등만 강조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많고 서로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가족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런 갈등을 자연스러운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어느 한 구성원을 희생해 평화를 유지하는 건 건강한 가정의 모습이 아닌 만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게 고부갈등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