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증명' 못하는 가족관계증명서
상속 땐 제적등본 우선
증명서 모녀 관계라도 등본 미표시땐 상속 불가, 호적부 대체 역할 못해
재혼 가족 서류상 남남
새 부모의 증명서에 새 자녀 이름 안 올라 기관 서류 제출땐 난감
지난 1월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은 딸 우모(33)씨는 어머니의 유일한 혈육이었지만 그 재산을 상속 받지 못했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모녀관계로 표시돼 있었지만 옛 호적등본 격인 제적등본에 모녀관계가 표시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우씨 친부와 이혼하는 과정에서 그런 상황이 된 것을 안 우씨는 두 사람의 관계를 입증해 상속을 받기 위해 국민신문고, 동사무소, 등기소 등을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우씨는 26일 "가족관계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는 이런 서류 제도를 도대체 왜 만들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부장제적인 호적부를 대체하겠다며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가족관계등록부 제도가 가족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가족관계등록부 중 가족관계증명서는 옛 호적의 아버지 기준이 아닌 자신을 기준으로 해 가족관계를 설명하는 증명서다. 반면 제적등본은 사망한 3대 이상의 가족관계까지도 기재돼 있어 상속시 사용된다. 그런데 두 서류에 차이가 있을 경우 제적등본의 기록만 인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재혼 가정의 경우 이 증명서로 새로운 가족 구성원간 가족 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불편을 겪는 이들도 많다. 김모(43)씨는 지난해 9월 한 이동통신사에 가족 할인 요금제 신청을 하려고 가족관계증명서를 뗐다가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새어머니와 서류상 남인 것을 알았다. 민법(제779조 1항2호)에 따라 김씨 새어머니는 엄연한 가족이지만 가족관계증명서로 따지면 가족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재혼으로 한 가족이 됐어도 새아버지(새어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자동으로 자녀라고 기재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둔 재혼가정에서는 고통이 더 크다. 학교나 기관 등에서 가족관계증명서 제출을 요구할 때 새아버지ㆍ새어머니와의 관계를 증명하려면 부모의 혼인관계증명서까지 내야 한다.

은행원 최모(24)씨는 지난 5월 미성년 자녀의 만기 예금을 찾으려고 창구를 방문한 한 여성의 인출 요구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재혼가정이라 가족관계증명서에 아이의 친권자로 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최씨는"'추가로 서류까지 내가며 이혼한 티를 내야 하냐'며 예금을 아예 찾지 않는 고객들을 볼 때마다 난감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가족관계증명서에서 가족으로 인정되려면 계부나 계모가 정식 입양절차를 밟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정법률상담소 관계자는 "혼란을 감수하고 새부모에게 적응해 살고 있는 아이가 새부모와 서류상 남이라는 걸 알았을 때 가정의 평화가 깨질 수도 있다"며 "증명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