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후폭풍] 정치권 의식 두루뭉술… 헌재, 스스로의 권한 포기했나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29일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에서 절차의 위법을 인정하면서도 법안은 유효하다고 한 결정에 대해 논란이 거세다. 특히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절차적 위법의 결과를 바로잡지 않은 것에 대해 헌재가 정치권을 지나치게 의식해 스스로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회 자율성 존중" 권한쟁의 심판 적극적 역할 저버린 셈
신문·방송법'절차침해-효력유효' 의견각각과반수안돼


헌재의 '사법자제' 정당한가

헌재의 이 같은 결정은 사법자제론(司法自制論)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법자제론은 사법부(헌재 포함)가 입법ㆍ행정부 결정에 대한 가치 판단을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는 사법철학을 말한다. 입법ㆍ행정 작용이 법률이나 기존 판례의 명백한 위반이 아닌 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사법부는 선거 권력이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점이 그 논리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헌재는 기본적으로 헌법에 대한 분쟁 및 그에 따른 정치적 쟁송을 해결하는 기관이라는 점, 대통령과 함께 헌재 역시 헌법의 수호자로서 책무를 지닌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개입 의지가 요구된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남복현 호원대 교수(헌법학)는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전임 3기 헌재가 행정수도 및 탄핵 결정 등에서 정치적 책임 문제에 휘말렸던 상황을 피하기 위해 현재 4기 헌재가 미디어법에 대해 포퓰리즘적 결정을 내리게 된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절차는 야당, 효력은 여당 손을 들어주는 절충안을 선택했지만 실은 아무도 원치 않은 결과가 돼버렸다"며 "이처럼 불씨를 남기게 되면 헌재 스스로가 입지를 좁히는 결과가 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위헌ㆍ위법 시정은 국회 몫?

일부 재판관들이 "위법의 시정은 국회에 맡겨두는 게 옳다"며 법안 효력 문제를 국회의 자율적 해결에 맡겨버린 데 대해서도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66조에 '헌법재판소는 (권한쟁의) 심판 대상이 된 국가기관 또는 지자체 권한의 존부ㆍ범위를 판단하며, 권한침해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을 취소하거나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고 명시,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서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법에 따라 부여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런 문제의식은 소수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들도 드러내고 있다. 조대현 송두환 김희옥 재판관은 "심의ㆍ표결권 침해를 확인하면서 그 위헌ㆍ위법성 시정 문제를 국회 자율에 맡기는 것은,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질서에 맞춰 행사되도록 통제해야 하는 헌재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절차-효력 별도 판단, 또 다른 문제

헌재는 신문법과 방송법의 '절차'와 '효력'을 각각 분리해서 낸 결론을 조합하는 방법으로 최종 결론을 냈다. 절차에 대해서는 신문법은 7대 2로, 방송법은 6대 3으로 국회의원의 표결권 침해가 있었다고 결정했다. 반면 효력에 대해서는 신문법은 6대 3으로, 방송법은 7대 2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최종 결론에 해당하는 주문(主文)으로 채택된 '절차 침해-효력 유효'에 딱 맞게 의견을 낸 재판관은 이강국 소장 등 4명뿐이다. 방송법도 마찬가지여서 두 가지 주문과 일치된 의견을 낸 재판관은 김종대 재판관 등 4명뿐이다.

야당 측 청구에 맞게 분리 판단한 것이라는 반론도 가능하지만, 주문 결과를 놓고 볼 때 재판관 9명 중 과반수에 못 미치는 재판관만이 주문에 맞게 의견을 낸 셈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