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3월 6일] 거인의 노후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82)는 1982년 첫 총리 취임 이후 줄곧 조롱 섞인 유머의 대상이었다. 공식적으로 키 193㎝, 몸무게 130㎏의 코끼리 같은 몸집에 어눌한 말씨 때문이었다. 흔한 유머 가운데 하나. 콜이 부인과 함께 정원을 치우다 수류탄 3개를 주웠다. 이걸 경찰에 갖고 가던 중 부인이 걱정스레 물었다. "하나가 터지면 어떡하죠?" 잠시 생각하던 콜은 "2개만 주웠다고 하지 뭐"라고 천연덕스레 말했다.

■ 콜의 면모는 애초 대중적 스타 정치인과 멀었다. 라인강변의 한촌(閑村)인 고향 지역구에서는 한 번도 당선되지 못해 늘 비례대표로 의회에 진출했다. 그러나 일찍부터 기민당(CDU) 청년조직에서 활동한 콜은 뛰어난 지략과 정치력으로 당의장에 올라 2기 연속 집권에 이르렀다. 이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통일의 기회를 기민하게 포착, 동독 주민과 주변 강대국을 적극 설득해 대업을 이뤘다.

■ 콜은 유머와는 달리 역사학 박사답게 역사와 정치를 움직이는데 탁월했다. 1998년까지 16년간 총리를 역임, 비스마르크 이후 최 장수 총리로 '영원한 재상(宰相)'을 꿈꾼 그는 그러나 98년 총선 패배 뒤 급격히 추락했다. 1990년 통일 총선 때 동독지역 승리를 위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불법 조달한 비리가 뒤늦게 불거져 굴욕적 정계 은퇴의 길을 걸었다. 게다가 가정적 불행이 겹쳤다.

■ 콜의 부인은 항생제 후유증으로 심한 햇볕 알레르기를 앓아 은둔생활을 하다가 2001년 자살했다. 그 뒤 34살 연하의 현재 부인과 재혼했으나, 그 직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 신세가 됐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다. 부인은 경제부 국장직을 휴직하고 고향에서 콜을 돌보고 있으나, 같은 또래 두 아들과는 소원(疏遠)했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감금설'을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여기에 콜이 고르바초프, 미테랑 등 당대 지도자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 역사적 기록물을 둘러싼 유산 다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거인의 노후가 처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