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에 걸리면 유통·상생법 '도루묵'
중기·소상인 보호조치… 美업체, ISD로 제소 가능
공공요금 인상 억제도 FTA조항에 위배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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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재래시장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국내 법률 등과 충돌해 큰 혼란이 우려된다. 전기료 인상 등 정부의 공공정책까지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국회와 통상전문가 등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상당수 국내 법률 및 정책이 한미 FTA 협정문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

우선 6월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 등이 재래시장 경계에서 1㎞ 이내 범위(전통상업보존구역)에 있을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등록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은 국내 전통상인만 보호하는 조치여서 미국 입장에서는 FTA 서비스 협정에 규정된 시장접근 및 내국민대우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백일 울산과학대 유통경영과 교수는 "월마트 등 미국의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국내 진출 과정에서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ISD)를 통해 제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기업의 마구잡이 사업 확장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이 사업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이른바 '상생법'도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정부는 "미국이 그간 협상 과정에서 유통법ㆍ상생법을 문제삼지 않았고, 이미 7월부터 FTA가 발효 중인 유럽연합(EU)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면서 "만약 미국이 문제제기를 한다면 최대한 우리 입장을 전달하고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공식 이의를 제기하면 서비스투자위원회나 공동위원회 등에서 논의가 불가피하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 중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도 논란의 소지가 많다.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지정함으로써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겠다는 의도인데, 미국 기업들이 시장접근을 제한당했다며 이의를 제기하면 국제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정부는 "민간 기구인 동반위의 권고사항이어서 문제 될 게 없다"고 했지만,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대기업들이 시장 진출에 실패하면 차별적 대우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전기료 인상 움직임처럼 공공요금 책정도 시비거리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전기ㆍ가스 등 공공서비스 요금은 FTA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예외로 해뒀다"는 입장이지만, 한미 FTA 제16조는 '전기, 수도, 철도 등 공공요금은 상업적 고려에 따라 책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해 논란의 소지가 있다. 원칙대로라면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려 해도 그 근거가 사라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충돌의 소지가 있는 조항들은 추가 논의를 통해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원목 교수는 "지난 재협상 때 자동차를 내주는 대신 이런 점들을 미국에 얘기해 양보를 얻어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며 "한미 FTA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정리해 속히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