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돈 거래 만연… 부녀회 잡수입은 '눈먼 돈'
[아파트 공화국의 어두운 그늘] ① 비리로 얼룩진 '아파트 공화국'
관리실태 복마전에 주민들은 속수무책
한국은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한국인의 50% 이상, 서울 인구의 70%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수도권엔 3,000세대가 넘는 외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대형아파트 단지가 흔하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0 전국인구주택총조사 주택부문’ 전수집계 결과에서도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수는 전체의 47.1%인 816만9,000가구로 단독주택 가구 비율 39.6%를 추월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 아파트 공화국은 속출하는 비리와 주민간 갈등, 부작용에 골치를 썩고 있다. 허술한 관리비 운영과 관리 실태는 너무나 참담하다.

이래가지고는 아파트가 다수 국민의 행복의 보금자리가 될 리 만무하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 선진국 도약을 눈앞에 뒀다는 한국의 아파트 운영 실태는 너무나 후진적이다. 비리와 분쟁으로 얼룩진 아파트 공화국의 실태는 상당부문 성장 일변도의 정부 주택정책이 빚은 결과다. 그 동안 정부는 아파트 공급에만 치중하고 관리는 민간의 영역이라며 방치해 주민들만 속수무책 피해를 입고 있다.

아파트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입주민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외부감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공동주택 관리시스템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파트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을 4회에 걸쳐 살펴보고 공공의 차원에서 그 해결책을 고민해 본다.


<시리즈 순서>
① 비리로 얼룩진 '아파트 공화국'
② '아파트 공화국'은 '소송 공화국'?
③ "외부감사제도 도입해야"
④ 아파트비리 척결 나선 시민단체들


한국의 아파트는 높은 투자가치와 편의성을 내세워 중산층의 가장 이상적인 주거형태로 인기를 끌어 왔지만 실상 비리의 온상지로 타락한지 오래다.

관리비의 허술한 관리실태가 단적인 예다. 1,000가구 이상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한해 수십 억 원의 관리비가 걷히는 등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이 돌다 보니 각종 횡령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국민이 내는 관리비는 연간 5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돈이 투명하게 집행되는지 감시하는 기구나 기관이 없어 주민대표와 관리소장이 관리비를 내 돈 쓰듯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6월 3,000세대가 넘게 살고 있는 서울 A아파트에서 지난해 주민 직선제로 선출된 입주자대표 등 2명은 관리소장이 전기요금을 초과 징수해 주민에게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며 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관리소장이 2009년 7월12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한국전력에서 부과한 전기요금보다 3,478만 원 가량 더 많은 금액을 부과하고, 같은 기간 수도요금 및 수선유지비 명목으로 1억1,441만원 상당을 초과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부산에 있는 B아파트 주민들도 관리소장이 10년 동안 공사비 명복으로 관리비를 과다하게 부과한 정황을 발견해 얼마 전 관리소장을 형사고발했다.

경북 문경시 모 아파트 입주자대표 A씨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관리비 등 공금 1억7000여 만원을 빼돌려 가족들에게 교부한 혐의로 문경경찰서에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건설공제조합으로부터 받은 하자보수보증금 2억1,600만원 가운데 1억5,000만원을 빼내 자신의 여동생에게 전달하고 남편과 시어머니를 각각 아파트 영상기사와 미화원으로 등록시켜 월급 명목으로 1,900여 만원을 지급했으나 실제로는 이들이 해당 업무를 보지 않았다. A씨의 남편 B씨는 입주자로부터 가스설치비를 법정한도의 2배인 5만원을 받는 수법으로 19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A씨 가족의 이 같은 비리 혐의는 A씨가 관리비 사용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점에 의문을 품은 일부 입주민들이 경찰에 진정서를 내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입주자대표는 아파트관리업체 선정권 및 관리소장의 임용권을 쥐고 있고, 아파트 내 법인 관리규약을 만들며, 단지 내 수익사업과 하자보수 공사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금품수수 등으로 추문을 일으키는 일이 많다.

위탁업체들이 일을 따기 위해 입주자대표에게 로비를 한다는 건 관련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지난해 감사원 조사에서 수도권 10여개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은 아파트 관리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뇌물로 수천만 원씩을 챙기다 적발됐다.

또 지난해 서울 지방 경찰청 수사에서 위탁관리업체 임직원 11명이 아파트 위탁관리 계약을 따내려고 강원도 속초시 C아파트 입주자대표에게 1,400만원을 건네는 등 지난해 상반기 동안 전국 10여개 아파트 입주자대표에게 모두 2억 4,8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일도 있었다.

공사를 둘러싼 부당거래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와 동대표 등 4명은 번갈아 회장을 하며 계약서도 없이 아파트 수리 용역을 특정 업체에 몰아주고 4,6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것으로 지난 감사원 조사에서 밝혀졌다. 또 지난해 경남 창원 중부결찰서는 승강기 보수업체 선정대가로 향응 및 금품을 수수한 이 지역 모 아파트 동대표와 금품을 제공한 공사업체 대표 등 4명을 검거했다.

부녀회의 불투명한 수익사업도 종종 비리로 이어진다. 재활용품 판매는 물론 시시때때로 바자회다, 할인행사다 주민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수익사업을 벌이지만 여기서 생기는 돈이 어디로 어떻게 쓰이는 지 제대로 아는 주민은 거의 없다.

주택법상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위)가 하도록 돼 있는 아파트관련 수입사업 권한을 실제로는 아파트 친목단체인 부녀회가 쥐고 있는 곳이 많다. 부녀회는 아파트 공용부지 등 입주민의 공동자산을 가지고 알뜰시장, 재활용품 판매, 게시판 광고료 등 각종 수익사업을 벌이지만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 내역을 공개하지 않거나 아예 장부조차 작성하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서울 관악구의 모 아파트 부녀회는 알뜰시장을 관리해 연 1,500만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이를 입주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800세대가 사는 경기도의 또 다른 아파트 단지에선 부녀회가 알뜰장 계약금, 게시판 광고료, 재활용품 판매 등으로 한해 수 천 만원씩 4년간 관리해왔다. 회계감사결과 일부 지출내역 영수증이 제출되지 않는 등 회계가 불투명하자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알뜰시장 업체 선정과정이 불투명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부녀회는 알뜰시장업체 선정을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선정대가로 부녀회장이 거액의 뇌물을 챙긴다는 게 업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알뜰시장 상인은 “단지 크기에 따라 자릿세 차이가 있지만 1,000세대가 넘는 중대형 단지는 계약금이 연간 2~3억 정도”라며 “선정대가로 부녀회장에게 소나타급 차한대 빼주는 건 예사”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부녀회장 중에는 뒷돈을 관리하는 비자금 통장까지 만들어 놓고 업체로부터 받은 돈의 일부는 떼어먹고 나머지는 회원들과 나눠 갖는 식으로 처리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일부 관리업체나 입대위, 부녀회가 유착해 비리를 공모하는 관행이 관리의 투명성 확보에 암초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위에서 언급한 서울 A아파트의 경우 입대위 구성원인 동대표들이 관리소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입주자대표를 강제 해임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부산 B아파트 입대위는 이 아파트 비상대책위원회가 관리소장의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선임한 외부회계감사에게 선임료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우겨 소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처럼 간혹 관리소장의 비리를 견제하는 주민대표나 입주민들이 있어도 입대위나 부녀회에 보이콧당하기 일쑤다. 이들은 보통 서로의 비리를 무마하려고 착복한 돈의 일부를 나눠먹는 식으로 얽히고설킨 비리사슬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카페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 시삽 송주열 씨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입대위와 관리소장, 부녀회가 실제로는 비리를 봐주고 공모하며 주민들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경우가 허다해 비리근절을 더 어렵게 만든다” 주장한다.

법적인 장치도 없는데다 관리주체와 주민자치단체, 친목단체 회원들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결탁한 일부 아파트단지에선 관리비 횡령 등 금품관련 비리 외에 온갖 부정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입주자대표 자리를 두고 경쟁이 과열돼 법정싸움까지 치닫는 가하면 자격을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관리규약을 관리소장과 주민대표 등 소수가 입맛대로 정하는 것도 각종 비리와 부정의 불씨가 되고 있다. 비효율적이고 부실한 관리사무소 운영행태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입주자대표 자격을 둘러싼 논란, 관리사무소 운영 등 공동주택과 관련된 서울시 민원이 지난 2007년 1,245건 2008년 1,544건, 2009년 1,553건으로 증가추세를 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09년 분야별 민원을 보면, 1,553건 가운데 입대위 회장?동대표 선출 및 자격관련이 266건으로 가장 많았고, 관리규약 문제 177건, 관리사무소 운영 129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2009년 김모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입주자들에게 정당하게 입주자대표회의 임원으로 선출된 사람을 해임됐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그런 다음 자기 입맛대로 새로운 동대표를 선출하려다가 원래 동대표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서울 노원구의 모 아파트 동대표들은 자신들만 종신제로 동대표를 할 수 있도록 관리규약을 개정해 놓고 입주민의 공사 서류 공개 요청을 거절해왔다. 입주자대표 자리를 놓고 권력다툼을 하다 폭력이나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입대위가 마음대로 관리규약을 뜯어 고치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지난해 감사원이 서울시 100개 아파트에 대해 표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중 22개 아파트에서 관리현황 등을 공가해자 않도록 관리규약을 정해놓았고, 15개 아파트에서는 65세 이상은 합리적 이유 없이 동대표를 할 수 있게 했다. 공사계약 업체와 관련된 사람도 동대표를 할 수 있게 관리규약을 개정한 아파트 단지도 15개에 이르렀다.

아파트 관리주체와 운영주체가 자기들 이권 쫒기에만 급급하다보니 입주자의 편의도모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주택관리업체들은 아파트 관리 업무를 수탁하기 위해 입대위를 상대로 로비에만 열을 올린 채 입주민에게는 형편없는 관리서비스를 제공하기 일쑤다. 감사원 조사에서 법에서 정한 장기수선계획도 수립하지 않고 아파트에 대한 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는 단지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같은 조사에서 주택관리업체 236개 업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6개 업체(53.4%)가 자본금이 700만원에 불과하고 3년 이상 주택관리 실적이 전혀 없는 등 등록요건이 미달한 부실업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이들 업체 중 100개 업체의 소속 주택관리사 등 215명은 해당업체에 근무하지도 않으면서 불법으로 자격증만 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파트 비리가 성행하는 사이 주민들의 피해와 불만은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관리주체 등의 비리와 횡포를 견제할 수단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주택법에 따라 관리주체 등을 지도·감독해야 할 지자체는 ‘인력부족’, ‘사적인 영역’ 등을 이유로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아파트 내 분쟁해결을 위해 지난 2003년부터 자치구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내 분쟁은 늘어나는데 관련 규정이 애매하거나 미비해 현장에서 여러 가지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결국 아파트 내 갈등은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동주택 입주민간 법정 소송은 최근 5년간 6배나 늘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경제적, 정신적 피해가 막대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경제적 손실이 크게 증가해 아파트 분쟁은 골치 아픈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