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영화, 美서 드디어 일냈다
극장당 평균수익 1위… 상영관 대폭 확대 전망
박찬욱 감독이 미국에서 연출한 영화 '스토커'가 뭔가 큰일을 낼 조짐이다.

5일 미국의 영화 통계 사이트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 보스턴, 시카고 등 주요 도시의 7개 상영관에서 개봉된 '스토커'가 극장당 평균 수익 1위를 차지했다.

'스토커'는 주말 동안 16만547달러(약 1억7,40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에서 상영된 모든 영화 중 최고 수익이다. 한 상영관마다 평균 수익이 2만2,686달러(약 2,470만 원)인 걸 고려할 때 놀라운 수치다.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잭 더 자이언트 킬러'가 한 상영관 평균 7,717달러의 수익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수익이 3배에 달한다.

'스토커'가 개봉 첫 주에 좋은 성적을 거둠에 따라 투자·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 측은 이번 주말 상영관을 대폭 늘릴 것으로 보인다.

'스토커'는 흥행 정도에 따라 개봉관 확대를 결정하는 '롤아웃' 방식으로 개봉됐다. 내털리 포트먼 주연의 영화 '블랙 스완'이 첫날 11개 상영관에서 개봉해 2,400여 관으로 늘려나갔으며, 최근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은 11개 상영관에서 개봉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2,000개 이상으로 상영관을 늘린 바 있다.

'스토커'는 미국 평단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영화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박찬욱이 영어 데뷔작인 '스토커'로 미국의 스크린에 피의 줄무늬를 남긴다"는 리뷰를 내보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2003년 '올드보이' 이후 한국의 작가(박 감독)를 주목해온 팬들은 실망하지 않을 것이고, 영화의 아주 섬뜩한 요소들과 톱 배우 캐스팅은 그를 전혀 모르는 장르 팬들까지도 분명히 매혹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오래 기다려온 박찬욱의 영어 데뷔작은 고딕풍의 동화처럼 아름답게 꾸며진 가족 미스터리"라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질식시킬 듯한 힘이 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스토커'에는 문학적인 인용과 상징이 풍부해서 각각의 인물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내려 애쓰도록 사로잡는다"고 했다.

앞서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라스트 스탠드는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에서 흥행에 실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라스트 스탠드와 '스토커에 이어 할리우드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다. '설국열차'는 개봉도 하기 전에 제작비(4,000만 달러·약 430억원)의 절반가량인 200억원 이상을 선판매로 벌어들여 화제를 모았다.

"여백 많았던 각본, 채워 넣을 것도 많았다"
■ 박찬욱 감독,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 들고 귀국
수상한 행동하는 삼촌, 의심하는 조카와 긴장 담아
B급 스릴러 류의 플롯… 은유·치밀한 심리묘사로 우아한 스릴러로 재탄생
"디테일 강한 섬세한 연출" 주연 배우·현지 언론 찬사


고경석기자


“영어도 못하는 사람을 굳이 데려다 영화를 찍게 하는 건 잘하는 걸 하라는 뜻일 테니 해 달라는 걸 해줬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박찬욱(50)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찍은 첫 영화 ‘스토커’로 ‘박쥐’ 이후 약 4년 만에 국내 관객과 만난다. 이 영화는 박 감독과 일해보고 싶었으나 그가 남의 각본으로는 영화 만들지 않는 줄 알고 연락하지 않던 미국 제작사 ‘스콧 프리’가 박 감독 측의 영화 제안을 살갑게 받아들여 빛을 보게 됐다.

그는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주연 배우 미아 바시코브스카(23)와 21일 기자회견에서 “낯선 땅에서 외롭고 어려움이 많았는데 조국에 와서 공개하게 되니 감개무량하다”며 “독특한 영화라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염려가 된다”고 말했다.

TV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로 유명한 배우 웬트워스 밀러가 쓴 ‘스토커’는 갑자기 나타나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삼촌과 그를 의심하는 조카 사이의 긴장을 그리고 있다. 얼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초기 걸작인 ‘의혹의 그림자’(1943년)를 떠올리게 한다. ‘스토커’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사고로 잃은 18세 소녀 인디아(바시코브스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삼촌 찰리(매튜 구드)가 찾아오면서 어머니 이블린(니콜 키드먼)과 기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영화는 초반에 ‘의심’에 무게중심을 두었다가 스토리가 ‘성장’ ‘혈연’으로 옮겨가며 ‘의혹의 그림자’라는 그늘을 걷어낸다.

지난달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됐을 때는 ‘스토커’ 시나리오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현지 평론가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박 감독의 연출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좋았다. 미국 영화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무언가 불안하게 만드는 박찬욱의 시각적 표현과 배우를 다루는 솜씨 덕에 밀러의 시나리오에서 자주 보이는 허점들이 가려진다’고 평했다.

실제로 박 감독은 뻔한 B급 스릴러를 연상하게 하는 빈약한 플롯에 풍성한 상징과 은유, 치밀한 심리묘사를 채워 넣었다. 거기에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까지 더해져 영화는 우아한 심리 스릴러이자 기묘한 성장 스토리로 환골탈태한다. 박 감독은 “이 각본을 선택한 건 누가 연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라며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여백이 많아 채워 넣을 수 있는 게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40여회차의 촬영 끝에 완성했다. 그는 “한국에서 찍는다고 가정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것의 절반 수준”이라면서 “현장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초 단위로 진땀 빼면서 찍어야 했던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니콜 키드먼 같은 배우들과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 영화 ‘파이’ 때부터 좋아했다는 영화음악 작곡가 클린트 맨셀, 영화 포스터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메리 엘렌 마크 등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영화의 큰 소득이었다고 덧붙였다.

바시코브스카는 박 감독을 “지금까지 같이 일한 다른 감독들과 달리 섬세하고 디테일에 강하면서 배우들의 생각을 듣고 나서 반영해주었다”며 이번 촬영이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스토커’는 28일 한국에서 먼저 개봉한 뒤 미국에서는 3월 1일부터 상영한다. 미국에서는 전국에서 동시 개봉하는 ‘와이드 릴리즈’ 방식이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 먼저 상영하고 관객 반응에 따라 규모를 확대하는 ‘롤아웃’ 방식으로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