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설경구 "나는 '컷'하면 살수 있지만 소방관은 못 그러잖나"
설경구, 김상경, 손예진 주연의 영화 '타워'가 개봉 19일 만에 전국 445만 관객을 모으며 해가 바뀌어도 지칠줄 모르는 광풍과 같은 기세를 과시하며 추운 겨울 극장가에 훈풍을 불어 넣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개봉 당시에는 '레미제라블', '호빗: 뜻밖의 여정' 등 할리우드 복병들 탓에 다소 고전한 감이 없지 않지만 실제보다 더 실사 같은 불과 물 CG와 여의도 63빌딩과 나란히 선 쌍둥이 108층 빌딩인 타워 스카이의 위용, 거기에 영화에 시종일관 긴장과 비장미를 불어 넣는 설경구 등 주연배우와 재난 영화임에도 폭소탄을 안겨주는 김인권, 이한위 등의 감초 배우들 덕에 '타워'는 할리우드 재난 영화에 비교해 손색이 없는 웰메이드 무비로 관객들 사이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0년작 영화 '해결사' 이후 영화 인터뷰 자리에 오랜만에 선 설경구를 만났다.

영화 '해운대'에 이어 또 다시 재난 영화의 주인공을 맡아 불과의 사투를 펼친 만큼 고단했던 촬영기를 털어 놓을 법도 한데 설경구는 한사코 "사투라고 표현할 수 없다. 무거운 파이버와 유독가스 때문에 고생하기는 했어도 내가 소방관을 체험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몸이 힘들기로는 '역도산'이 최고였고, 마음이 힘들기로는 '박하사탕'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무거운 소방복을 입고 한 여름에 뛰어다니고 아무리 유독가스를 맡아도 몇 분 촬영 후 '컷' 소리가 나면 살아날 수 있잖나. 그렇지만 실제 소방관분들은 그럴 수가 없다. 감히 그 분들에 비하면 고생했다고 말하기가 창피하다"고 말했다.

- 소방관 역을 맡아 불과의 사투를 펼쳤는데.

▲ 사투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최근 내가 힘들었던 것처럼 몇몇 기사가 나가고 난 후 창피해 죽겠다. 고생했다 어쨌다 하는데 사실 가장 힘들었던 영화는 '역도산'이다. 사실 '역도산' 때는 '레슬링을 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소방관을 했다'는 말은 못하겠다. 나야 현장에서 아무리 유독가스를 맡고 무거운 소방복을 한 여름에 입고 고생했어도 감독의 '컷' 한 마디면 살아날 수 있지만, 실제 소방관들은 그렇지 못하잖나. 최근에도 몇 분 돌아가시고 하지 않았나. 내가 고생했다고 말하는 게 사실 무척 창피하다. 진짜 불이나 유독가스에는 '컷'이 없잖나. 그 분들에 비하면 그게 무슨 고생인가 싶다.

- 발화점 장면이나 몇몇 불 장면은 꽤 위험했다고 들었는데.

▲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안전장치를 최대한 했다. 하지만 불을 인간이 100%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한 번 휙 지나가면 다 그을린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타는 건 일도 아니다. 발화점 장면에서는 불기둥이 팍팍 솟는다. 거리가 아무리 있어도 열기가 다 느껴진다. 한 장면이 컷이 되고 모니터를 확인하고 세트를 바꿔서 다시 찍어야 할 때 '배우들, 들어가시죠'하면 정말 들어가기 싫은 순간도 있다. 소방복은 천근만근이고 산소통도 매야 한다. 파이버도 한국 것은 멋이 없다고 시카고에서 공수를 해왔는데 그 무게만 2kg이다. '화려한 휴가' 감독이라 그런지 5월 18일에 크랭크인을 했는데 9월이 되니 두통이 엄청나게 심해지더라. 파이버만 써도 두통이 온다. 그런 것이 힘이 들기는 했다.

- 이번 영화의 출연 계기는.

▲ 내가 '열혈남아'에 출연할 때 김지훈 감독이 캐스팅을 위해 강경 촬영현장까지 찾아왔더라. 그 때 만나질 못했다. 내가 그렇게 건방 떨 사람도 아닌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다. 너무 미안하고 창피했다. 이후 만남에서 얘기를 나눠보니 김 감독은 꼭 촬영 가기 전 생각하는 게 있다더라. 오늘은 어떻게 배우를 재미있게 해줄 지 고민한다더라. 촬영 내용 시뮬레이션하고 동선 짜고 보다 배우들 즐겁게 해줄 고민을 한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다가 '타워'를 준비한다는 얘기를 듣고 책을 달라고 했다. 어느 날 전화를 했더니 분당에서 책 작업 중이라더라. 그래서 '책을 본다고 내가 뭘 아냐, 그냥 같이 하자'고 말했다.

- 김지훈 감독이 한양대 후배이기도 한데.

▲ 김 감독이 좀 늦게 입학했더라. 학교 때는 친분이 없었다. 볼수록 놀라운 게 '화려한 휴가' 때는 제작비가 떨어져서 자기 동서가 월급을 들고 와서 돈을 보태기도 하고 집을 담보로 잡히기도 했더라. '타워'는 직접 배급사에 찾아가서 프레젠테이션도 했다고 들었다. 스태프들도 보통 챙기는 게 아니다. 요즘 보기 드문 감독이다.

- 제작보고회 당시 재난 영화는 다시는 찍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유효한가.

▲ '해운대'로 물 영화도 했고 이번에 불 영화도 했으니 할 건 다 하지 않았나. '재난 영화'라는 장르가 일정한 틀이 있기에 또 틀 안에 놓이게 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 설경구의 필모그래피는 역경과 고난의 인물들로 가득한 것 같다.

▲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박하사탕' 때였고 육체적으로는 '역도산' 때였다.

-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할 생각은 없나.

▲ 지금 촬영 중인 '감시'가 끝나고 나면 말랑말랑한 장르도 고민해 보겠다.

- 손예진과 호흡은 어땠나.

▲ 예진이와 특별히 호흡을 맞출 장면은 없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성격도 까칠하다던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엄청 선머슴아 같다. 엘리베이터 세트를 동아방송대학 안에 지었는데 양수리나 파주 보다 훨씬 높은 세트를 지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새벽 1시에 촬영 끝나고 술집을 어렵게 찾아갔는데 근처에서 쿵쾅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 손예진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노래방 예약을 하고 오더라. 노래방에 가서도 마이크를 안놨다.(웃음) 스태프들이나 다른 배우들과도 엄청나게 잘 어울리는 천상 선머슴아다.

- 설경구도 한 노래하기로 유명하잖나.

▲ 한 노래는 무슨. 김광석 노래 밖에 모른다. 김제동이랑 둘이 잘 가는 방배동 카페가 있는데 거기 가면 제동이가 기타치고 나는 노래한다. 둘이 자주 가서 밤새 김광석 노래를 틀어 놓고 술을 마셨는데 그 가게가 망했더라. 김제동이 생긴 건 그렇지 않은데 엄청 심하게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하지만 자기 콘서트에서는 정말 수백 명의 청중을 데리고 논다. 책도 많이 읽고 존경스러운 점이 많다.

- 한동안 활동을 못했던 명계남, 이경영 등 선배들이 복귀를 했는데.

▲ 두 사람 모두 너무 바쁘다. 연락이 안된다. 계남이 형만큼 야비한 역할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 '남영동 1985'를 보고 너무 기뻤다. 우리 이경영 따거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경영이 형이 우리 학교에 늦게 왔기에 나보다 1년 선배다. 내가 군대 가기 전 날 박미선 선배랑 술을 사준 기억도 난다. 경영 선배가 세상에 나오는데 김민종이 애를 많이 썼다. 그 순한 사람을…. 세상은 때론 잔인하고 또 불공평할 때가 있다.

- 요즘 아이돌 그룹에 대해 아는 게 있나.

▲ 딸 아이가 JYJ의 마니아 팬이라 그 친구들에 대해서는 꽤 아는 편이다.

- 차기작 '협상종결자'와 '감시'에 간단히 소개한다면.

▲ 아직 '협상종결자'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할 입장이 못된다. 당사자이면서도 당사자가 아닌 상황이다. '감시'에서 정우성, 한효주와 호흡을 맞추는데 정우성은 너무 재미 있고 한효주 또한 소주도 잘 마시고 너무 예쁘다. 두 작품 모두 잘 돼야 된다.